며칠 전 뜻밖의 슬픈 소식을 알아냈다. 여고 동창 중의 하나가 이 세상을 떠난 것을 1년이 지나 우연히 들은 것이다.


내가 친정 엄마 때문에 지난 몇 년간 매해 한국을 방문하곤 했었는데 한국에 가도 식구나 아주 가까운 친구들과만 만나고 여고 동창들과는 만난 적이 없었다. 2년 전에 갔을 때 우연히 연락이 되어 내가 왔다고 갑자기 자리가 마련 되어 졸업 후 30년이 넘어서야 같은 반 친구들 십 여 명을 만났다.


한 10 년전부터 반창회 모임 소식이 이메일로 오곤 했다. 나는 뉴욕에서 갈 수는 없지만 읽고는 부러워했던 적이 많다. 고국을 떠나 있는 것이 새삼 실감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 고국의 친구들은 이렇게 재미있게 사는구나! 하지만 워낙 내 발등의 불이 급한지라 감상에 젖을 새도 없었다. Three sons, full-time job, no helper!


30년만의 자리라 갈 때 좀 어색할 줄 알았는데 역시 옛 친구는 좋은 것. 통성명(얼굴은 알겠는데 이름이 전혀 생각 안 나는 친구들이 있었음) 후 금새 분위기가 좋아졌고 시간이 늦어지는 줄도 모르고 있을 뻔 했다. 한 가지 변한 것은 얼굴이 나이가 든 것과 화제가 연로하신 부모님 걱정, 아니면  자녀 결혼시킬 걱정 등이었다. 나는 좌중을 둘러 보며 누가 제일 젊어 보이는가, 누가 제일 예쁜가 하나를 골랐다. 그 친구는 말도 아주 재미있게 잘 했고 낙천적인 것 같았다. 나는  성격이 좋아야 얼굴이 예뻐지는구나하고 언뜻 연상을 했었던 것 같다.


그 예쁘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소식을 전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오랫동안 루푸스라는 병을 앓아왔고 아마도 그 병의 합병증으로 폐암으로 죽은 것 같다. 나는 이런 병명을 들은 적은 있는데 어떤 병인지 몰라서 구글로 검색을 해 봤다. 자기 몸안에서 생긴 것이 몸의 다른 장기나 신경, 세포, 뼈 관절 등을 공격하는 병, 그 원인을 아직 모르는 병, 이제까지는 치료 방법이 없는 병, 가임 여성이 주로 걸리는 병. 그 고통이 아주 심한 병.


성한 몸을 지닌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잠시 아프다가 나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무언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엄마가 아내가 며느리가 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특권인가? 주님께 기도드리고 떼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 이 더운 7월에 땀흘리고 잡초를 뽑을 수 있음이 빨래를 개고 먼지를 닦을 수 있음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더위가 한풀 꺾인 저녁 나절 더욱 짙어 보이는 녹음을 바라 볼 수 있음은 주님의 선물이다.


더위와 충족되지 못한 욕망과 게으름으로 나태해진 나를 다시 감사와 기적으로 초대한 친구의 영혼을 위하여 조용히 연도를 바쳤다.

                         주님, 제 친구의 영혼을 당신 빛으로 이끄소서.

                         저의 남은 날들을 당신의 사랑으로 채우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