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9월 3일 연중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No one who has been drinking old wine desires new,
(Lk.5.39)
 
 
제1독서 코린토 1서 4,1-5
복음 루카 5,33-39
 
기 도를 열심히 하는 것이 옳을까요? 옳지 않을까요? 당연히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고 우리는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신앙에서 나오는 기도는 커다란 착각과 혼란을 우리에게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몇 해 전 어떤 형제님 부부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지요.

그 형제님 부부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형제님께서는 아주 열심히 성당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주일을 거른 적이 없으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자매님께서 어떤 기도회에 다녀온다는 것이었어요. 기도하러 간다는 자매님을 말릴 이유가 없었지요. 자기 대신 열심히 기도하고 오라면서 오히려 격려까지 했답니다. 하지만 몇 번 기도회를 다녀온 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해지는 것입니다.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지는 것은 물론,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형제님께서는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가정을 이렇게 소홀히 하면 어떻게 하냐면서 조금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자매님께서는 집에 아예 들어오지 않고 기도회에 완전히 빠져 살더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기도 열심히 하는 이 자매님이 옳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인간생활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영성적인 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을 창조하신 이유는 이 세상 안에서 기쁨을 주시기 위한 것이지 기쁨을 빼앗기 위함이 절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자매님께서는 착각하고 계신 것이지요. 신앙생활을 위해서라면 인간생활과의 균형과 조화는 무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그 옛날 예수님을 비판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식하지 않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판합니다. 사실 단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느님 앞에 진정한 속죄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이기 위한 단식을 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이마에 작은 갑을 달았고, 재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인상을 쓰고 다녔습니다.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고는 있었지만 본래의 의도는 잊어버린, 보이기 위한 율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특히 인간생활과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율법이라면 새롭게 다가오시는 기쁜 소식인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완벽한 인간생활을 위해서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새로움은 낡은 것, 낡은 종교 요소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실 낡은 관습에 맛들인 사람은 변화를 바라지 않지요. 그래서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예수님께서는 주신 새로운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인간생활과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주님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선포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현명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카톨릭 인터넷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