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은 참 유혹거리가 많습니다. 세상이 살기 좋아지니까 고리타분한 성당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보다 오히려 냉담하면서 세상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더 들게되지요. 눈만 돌리면 수 많은 유혹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이 들겁니다. 그래서인지 이미 유럽은 텅 비어 있는 성당이 꽤 많이 있습니다. 여기 미국성당도 상당히 힘든 상황입니다.
우리가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악과의 전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 그것은 악의 유혹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무서운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 처자, 형제,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잘못 알아들으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진짜 부모님과 인연을 끊어야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강한 결단력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자기와 가장 친한 사람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결단력이 있어야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받고 있는 많은 유혹들, 특히 각자 마다 조금씩은 다르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강한 유혹들을 끊어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것은 힘이 듭니다. 그냥 에라 모르겠다하고 달콤한 유혹에 빠져 지내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들 것입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셨을까요? 좀 쉽고 편하게 살면서 예수님을 따르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더 큰 기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강아지 좋아하는 분들 계시지요. 강아지들은 먹을 것만 주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아직 절제력이 없는 강아지에게 좋아한다고 먹을 것만을 계속 주면 어떻게 됩니까? 경산도 사투리로 짜고 난다고 합니다. 몸이 비균형을 이루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되지요. 그래서 강아지를 정말 좋아한다면 음식 조절을 해줘서 건강하게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정말 행복해지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참 행복은 고통 뒤에 숨겨져 있습니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지요. 아픔 뒤에 찾아오는 행복은 평화로울 때 느끼게 되는 행복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세상이 줄 수 있는 단순한 행복만을 우리에게 주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행복, 진정한 참 행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원하신 십자가의 삶은 단지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참행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달콤한 유혹, 평화. 이것을 누리는 것은 아주 쉽지요. 그러나 값진 보물은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값진 참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오히려 십자가의 삶을 즐길 수 있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만을 믿고 따르게 되면 우리 또한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 더 큰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좀 더 용기를 갖고 수많은 유혹에서 벗어나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샘솟는 참다운 기쁨 속에 흠뻑 빠져 살아가는 1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제 주위에 너무나 많은 유혹거리들이 많습니다...하지만 주님의 자녀이기에 유혹을 물릴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주님께 청합니다... 유혹을 물리칠줄 아는 결단력과 용기를 얻어 유혹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주시는 참다운 기쁨을 갖기를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