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간 토요일 - 순교(殉敎)는 산고(産苦)의 아픔

아
이를 낳을 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어떤 산모들은 자신을 이렇게 아프게 만든 남편을 욕하며 머리를 쥐어뜯기도
한답니다.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다가 아이가 나오면 아픔이 싹 사라지고 자신이 그렇게 소리를 지른 것이 창피해진다고 합니다.
놀
라운 것은 그렇게 아팠으면서도 둘째, 셋째를 또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또 아플 것임을 알면서도 또 아이를 갖는 것은 참
신비스럽습니다. 아마도 그 아픔보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순
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기쁨과 영원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에 당당히 순교하는 것입니다. 순교가 더 가치 있는 일은 아이를 낳는 것처럼 이 세상에도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입니다.
피
를 흘리지 않고서는 어떠한 새로운 생명도 태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새 생명만
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피를 함께 세상에 뿌리듯이, 이 세상에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태어나기 위해서도 누군가의 그만한 고통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 있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누군가의 피 흘림을 통하여 탄생한 것입니다.
파
라오는 이스라엘의 인구가 늘어나자 태어나는 사내아이는 모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모세는 이렇게 ‘피밭’에서 자라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었습니다. 이 순결한 어린 순교자들의 피는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무고한 베들레헴의 아이들이 피를 흘리며 순교하게 됩니다. 이 아이들의 순교 속에서 구원자가 태어난 것이고, 이 구원자의 피 속에서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하
느님께서 아담의 옆구리에서 빼어 낸 갈비뼈로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옆구리를 찢으면 당연히 피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찢어 그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로 두 번째 하와인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탄생한 사람들입니다.
오
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순교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죽어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소명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역할임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뜨면 달과 별은 그 빛 속에 사라져야 하는 것처럼
그도, 오시는 태양이신 메시아는 점점 커지셔야하고 샛별이고 여명인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사라져야 함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세
례자 요한이 완전히 죽기 전까지는 그의 제자들이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마지막 남은 한 제자까지도 모두
그리스도께로 보내야 함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은 사라져줘야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
신을 위하여 죽는 죽음은 자신도 남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죽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들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씨가 됩니다. 지금 신앙생활을 하는 어떤 누구도, 우리가 알든 모르든 반드시 어떤 사람들의
희생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
제는 우리가 희생하고 순교하여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게 해야 할 때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점점 작아지고 죽어감으로써 그리스도께 첫
번째 제자들을 봉헌하였고 자신이 모은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였듯이, 우리들도 이젠 받기만 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어른들이 되어야합니다. 이렇게 신앙으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바로 나의 희생이 다른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지는 매일의 십자가들도 지고가기 힘겨울 수 있습니다. 그것을 불평 없이 지고 가는 것도 커다란 믿음입니다. 그러나 더 성장한 신앙인이 되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희생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소
화 데레사는 아픈 것을 참고 말하지 않는 것으로, 기도 때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는 것으로, 기침을 많이 하는 할머니 수녀님의
옆에서 그 소리를 참는 것으로, 빨래 때 물이 튀는 것을 그대로 맞는 것으로 세상에 셀 수 없는 영혼을 회개시켰고 전교의
수호성인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더 성숙한 신앙인이란, 나의 희생과 순교가 곧 새 생명을 탄생하기 위한 산고로 쓰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카톨릭 인터넷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