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일 (루가 10,25-37)
만남이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지요. 우리들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요.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들이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웃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누구이겠습니까? 흔히 우리들은 지금 살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을 이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웃을 자신의 민족으로 한정지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민족 이외의 사람들은 자신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고통을 받던지, 죽어가던지 유대인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웃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민족만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은 사랑으로 다가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즉 이웃은 있는 그대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그 자체가 이웃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사랑을 베풀어주는 그 사람이 이웃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 다가와주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인간관계를 벗어나서 적극적으로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인간관계를 형성하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는 소극적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가 많지요. 그저 남이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더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웃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이웃을 만들어가는 것이 참다운 신앙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집 주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 특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는 이웃이 되어주어야합니다.
만남이라는 것은 정말로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성당에 나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이 알고 체험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원하셨던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첫 출발점이 바로 이웃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알고만 있고 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의 결론은 마지막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웃이 되어주는 한 주간이 되어야겠습니다.